1992년 봄, 고교 졸업 후 문화평론가를 꿈꾸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 유학 정보를 얻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유학원의 조언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유학원의 추천을 받아 미국대학에 도착하였지만 학교의 상황은
저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학교에 대해 유학원에서 조금 더 사실에 입각하여 설명해 주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명문대 진학요건을 갖추며
차근차근 유학을 준비 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명문대 진학에 대한 꿈을 포기 할 수 없었기에
미국 현지에서 홀로 미국 대학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토플 성적을 만들어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하였습니다.
평론가를 꿈꾸며 떠난 유학이었지만 한국과는 다른,
미국 교육의 목적과 방식을 접하며 평론가가 아닌 교육가로써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대학 1학년 때 중요한 시험이 있는 날이었습니다.
서툰 영어로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고 미국인 학생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저는 교수님께 사정을 말하며 시험을
다른 날에 볼 수 있는 지 양해를 구하였습니다.
교수님은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이유인 즉, 이대로 시험을 강행하면 모르는 채로 시험에
임해야 하고 시험이 끝난 상태에서 더 이상 그 범위의 공부는
안 하지 않겠느냐며 시험일을 연기해주면 그 만큼 공부에
매진 할 것이기 때문에 연기해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시험의 목적은 학생을 평가하기만을 위함이 아닌
공부를 하게 하는 것에도 있다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시험점수로만 성적을 평가 받았던 한국에서와 달리,
미국에서는 시험 성적만으로는 A를 받을 수 없었고
교우들의 발표를 보고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토론 중심의 수업은 정답을 아는 것 보다는
다양한 시각을 통해 생각의 크기를 키우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물론 최근에 한국의 교육도 토론중심 수업으로 변화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 백 년간 토론 수업을 지향해온 미국과 이제 막 시작한
한국의 토론 수업이 같다고 보기엔 어려울 듯 합니다.
프로젝트 과제 또한 얼마나 멋진 주제를 발표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그런 주제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연구하고 설명하는 것에
더욱 중심을 두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미국 교육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닌 ‘삶’을 위한 것임을
알게 하였고 그 결과, 함께 수학하였던 대부분의 한인 동문들은
현재 각자의 위치에서 대체 불가한 인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3대 교육기업 중 하나의 교육기관에서
수년간 전문 진학컨설턴트로 활동하다가 한국의 “살아남기”에
급급한 교육을 “잘 살아가기”위한 교육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 유학원들은 제가 유학을 떠났던
그 시절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학생의 성향과 역량에 대한
고려 없이 특정 유학프로그램에 일괄적으로 학생들을
진학시키고 있고 다양한 편법을 제시하며 유학 준비생들에게
혼란을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각종 편법과 정형화된 프로그램으로의 유학이 결국엔 실패하는
유학이 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미국 학교는 학생들의 성장에 목적을 두고 가장 이상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있어 세계의 다양한 인재들이 수학하고 있습니다.
그 어떤 곳에서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최고의
교육환경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대로 유학을 경험한 학생들은 대학교수로, 대기업 임원으로,
전문직 종사자로, 정치가로, 한류의 주역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습니다. 우리 후배들은 제가 겪은 시행착오 없이
진정한 성장을 이루어 꿈과 목표를 성취할 수 있길 바랍니다.
제이미의 글로벌 진학 연구소, 유학이룸에서는 저의 모든 경험을
나누어 실력과 이력 모두 내세울 수 있는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드리겠습니다.